Engineering/자동차 개발 프로세스

[자동차 개발 프로세스] Ch 1. 상품 기획과 VTS: 엔지니어링의 헌법을 제정하다

조원동 2025. 12. 1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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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개발은 디자이너의 스케치북이나 엔지니어의 CAD 모니터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냉철한 비즈니스 계산기가 두드려지는 회의실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리 공학적으로 뛰어난 자동차라도 시장이 원하지 않거나 만들어서 남는 게 없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실패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무(無)의 상태에서 3만 개의 부품을 정의하는 기준을 세우고, 수천억 원의 투자 결정을 이끌어내는 치열한 기획의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시장 분석: 벤치마킹과 티어다운

 

 

 

 

 


 개발의 첫 단추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와 적에 대한 분석입니다. 마케팅 부서와 상품 기획팀은 가장 먼저 이 차가 진입할 시장(Segment)을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북미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3만 불 대의 도심형 전기 SUV"와 같이 구체적인 전장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바로 경쟁차 벤치마킹(Benchmarking)입니다. 단순히 경쟁사의 차를 타보는 수준이 아닙니다. 남양연구소와 같은 R&D 센터에서는 경쟁 차량을 구매하여 볼트 하나, 용접 타점 하나까지 완전히 분해하는 티어다운(Teardown)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경쟁사가 어떤 재질의 흡음재를 썼는지, 서스펜션 구조는 어떻게 원가를 절감했는지 샅샅이 분석하여 경쟁차 대비 원가는 5% 낮추되, 성능은 10% 상향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공략 포인트(Gap Analysis)를 도출해 냅니다. 이것이 기획의 기초 데이터가 됩니다.

 

 

 

 

 

 

 

 

엔지니어링의 헌법: VTS (Vehicle Technical Specification)

 

 

 



 시장의 요구사항이 정리되면, 이제 엔지니어들은 이를 공학적인 언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스포티한 주행 성능, 안락한 승차감 같은 모호한 마케팅 용어로는 설계를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작성되는 문서가 바로 VTS(Vehicle Technical Specification, 차량 기술 사양서)입니다. VTS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절대 변하지 않는 엔지니어링의 헌법과도 같습니다. 여기에는 차량이 달성해야 할 수백 가지의 목표가 구체적인 숫자로 박제됩니다. 

 

 

 

 

 

 

 

예를 들자면..

- 동력 성능: 0->100km/h 가속 7.2초, 최고 속도 210km/h
- 연비 효율: 복합 연비 14.5km/L (항속 거리 500km)
- 차체 강성: 비틀림 강성(Torsional Stiffness) 35,000Nm/deg 이상
- NVH: 아이들링 시 실내 소음 38dB 이하

 이 숫자들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훗날 차가 완성되었을 때, 이 VTS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게이트(Gate)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VTS는 프로젝트의 '합격/불합격 판정 기준'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뼈대: 패키지 레이아웃(Package Layout)

 

 

 


 VTS가 성능의 목표라면, 패키지는 공간의 배분입니다. 아직 디자인이 나오기 전이지만, 엔지니어들은 가상의 공간에 주요 부품의 위치를 잡는 패키지 레이아웃(Package Layout)을 수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확정해야 하는 것이 하드 포인트(Hard Point)입니다. 하드 포인트란 설계나 디자인이 변경되어도 절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고정 좌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승객의 엉덩이 위치를 나타내는 SgRP(Seating Reference Point), 휠의 중심점인 Wheel Center, 엔진 마운트의 위치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패키지 단계는 끊임없는 타협(Trade-off)의 과정입니다. 디자이너는 날렵한 루프 라인을 위해 천장을 낮추고 싶어 하지만, 패키지 엔지니어는 뒷좌석 승객의 머리 공간(Headroom)을 확보하기 위해 이를 저지해야 합니다. 엔진 설계자는 냉각 효율을 위해 넓은 엔진룸을 원하지만, 실내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는 엔진룸을 좁혀야만 합니다. 이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최적의 공간 배분안이 도출됩니다.

 

 

 

 

 

 

 

수익성의 검증: 목표 원가(Target Cost) 설정

 

 

 

 



 성능 목표(VTS)와 뼈대(Package)가 잡혔다면, 이제 계산기를 두드릴 차례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팔아서 이윤이 남지 않으면 기업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목표 원가(Target Cost) 개념이 등장합니다. 과거에는 만드는 데 든 비용 + 마진 = 판매가였지만, 치열한 경쟁 시대인 지금은 "시장이 허용하는 판매가 - 목표 마진 = 허용 원가"의 Top-down 방식을 따릅니다.

 

 

 

 

 

 


 기획팀과 재무팀은 시장 가격을 바탕으로 "이 차는 무조건 대당 원가 2,500만 원 이내로 만들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엔지니어들은 VTS를 만족시키면서도 이 원가를 맞추기 위해 신기술 적용을 유보하거나, 소재를 변경하는 등의 원가 절감(VE: Value Engineering) 활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최후의 관문: 프로그램 승인 (Program Approval Gate)

 

 

 



 Phase 1의 모든 활동은 결국 **[Gate 1. 프로그램 승인]**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함입니다. 이 회의체는 CEO를 포함한 최고 경영진이 참석하여 프로젝트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프로젝트 매니저(PM)는 이 자리에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완벽한 답변을 내놓아야 합니다.

1.  시장성: 이 컨셉이 타겟 고객에게 확실히 소구 될 수 있는가?
2.  기술성: 설정된 VTS 목표를 현재의 기술력과 일정 내에 달성 가능한가?
3.  수익성: 목표 원가를 달성하여 회사의 영업이익률 목표에 기여하는가?

 이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고 경영진의 승인이 떨어져야만, 비로소 공식적인 프로젝트 코드명이 부여되고 수천억 원에 달하는 개발 예산(Budget) 집행이 승인됩니다. 바야흐로 진짜 개발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공학적 이상(Ideal)과 비즈니스의 현실(Reality) 사이에서 가장 정교하고 치밀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Phase 1. 상품 기획'의 본질이자 책임입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이렇게 확정된 뼈대 위에 디자이너가 옷을 입히고, 엔지니어들이 가상의 세계 (Digital Twin)에서 정밀하게 설계를 검증하는 'Phase 2. 디자인 및 가상 검증' 단계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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